샘터 39기 모임을 마치면서
OO 엄마
“어서 와요 OO 엄마”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친구를 만난 듯, 이제는 그 누구도 불러주지 않을 것 같았던 감사한 호칭을 자연스럽게 불러주시는 수녀님과 처음으로 인사를 나눴던 날이 눈에 선합니다. 수개월간 무표정으로 지내던 제가 잔잔한 미소와 살짝 차오른 눈물을 머금고 수녀님과 첫인사를 나눴습니다. 밝고 경쾌한 얼굴이셨지만 그 가운데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보내는 따뜻한 위로를 받으며 봄의 기운이 완연한 4월 모현 호스피스와 귀한 인연을 맺었습니다.
도대체가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한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론 나처럼 아픈 사람이 또 있을까.. 그들은 어찌 살아가고 있을까... 함께 치유할 수 있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리저리 수소문 끝에 사별가족모임 ‘샘터’를 소개받고 제2의 가족을 만났습니다.
“평생을 가도 나아지지 않는 아픔이지만 한번 해보자고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이렇게 주어진 우리의 만남이 최선이니 한번 해봐요, 걸어가 봐요, 힘 내주세요.“
우리의 아픔을 다는 이해하지 못하신다고 하시면서도 수녀님의 말씀엔 희망과 힘이 있었습니다. 비록 길고 어두운 터널에 갇혀 있지만 주저앉아 있을 순 없으니 일단 걸어 보기라도 하자는 심정이었지요.
샘터 39기 식구들을 만나던 날 우리는 어색했지만 내가 아는 익숙한 감정들을 보았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두려운 몸부림을 느꼈습니다. 천근만근 무겁고 지친 몸뚱어리를 안고 얼마나 힘겹게 왔는지를 알기에 서로 대화는 없었지만 안타까운 신음 소리를 내며 우리는 각자의 슬픔을 견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8주간의 치유프로그램.
수많았던 시간 속에서 하나하나 찾아내 떠난 행복한 추억여행, 눈물범벅 미술, 회상놀이 테라피. 괴로운 애도 안에서도 내 몸을 살피라던 서로의 격려와 지지.
마치 머리통을 한 대 얻어맞은 듯 내가 아픈 만큼 내 옆의 가족도 더할 나위 없이 고통의 시간 속에 있음을 알고 나에겐 챙겨야 하는 가족이 있다는 당연한 현실을 깨닫게 해준 피규어(인형)테라피. 내가 갖고 있는 본성, 나의 진짜 색깔을 찾아 나를 되돌아봤던 컬러테라피. 싱그러운 초록이 가득한 청정자연 속에서 큰소리로 활짝 웃어가며 이야기꽃을 피웠고, 1등을 차지하려 도,개,걸,윷,모를 외치며 윷놀이에 진심이었고 허브향에 흠뻑 취해 우리의 몸과 마음은 잠시나마 생기를 찾았습니다. 정성이 깃든 건강하고 맛있는 식사까지 더해져 몸 둘 바를 모를 만큼 극진한 대접과 진심 어린 위로를 받은 포천 힐데루시로의 치유여행.
처음엔 화가 났습니다. 왜 오지 않아도 될 곳을 꾸역꾸역 찾아오고 왜 인연이 되지 않아도 될 사람들과 마주 보고 앉아 있어야 하는지 우리 모두는 수없이 원망하고 부정했습니다. 남은 내 삶을 잘 지켜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 공포, 막막함... 하지만 평생을 황망하고 갈기갈기 찢긴 가슴을 부여잡고 살게 될지언정 기억하겠습니다.
온전히 우리의 슬픔을 받아주시고 아픔을 피부로 느낄 만큼 고통스러우셨을 수녀님들, 샘터에서의 소중한 치유의 시간 그 어떤 말로도 대신 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샘터와의 인연이야말로 행운이며 축복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더없이 감사한 샘터 치유모임이 마무리되어 이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애도하고 기억하며 기도할 것입니다.
여전히 아픕니다. 아니 끝나지 않을 아픔임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물 같은 모현 가족들을 만나 우리는 앞날을 향해 한 발짝 내디뎠으니, 올겨울쯤엔 두 발짝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고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샘터 39기’가 되길 바랍니다.
또한 아낌없이 내어주신 수녀님들과 모현 식구들 무더위 속에서 건강 챙기시고 주님의 사랑과 평화가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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