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지치고 좌절한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말을 거신다.
“얘들아, 무엇을 좀 잡았느냐?” 그들이 대답했다. “ 못 잡았습니다.”
내가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죄인처럼 집에만 갇혀 지내고 있을 때, 수원교구에서 실시하는 호스피스 교육을 받게 되었을 때부터이다.
나의 잘못으로 내가 복이 없는 여자라서 남편을 먼저 보냈다는 죄책감과 남들의 시선이 두렵고 수치심으로 나를 옭아매고 있었을 때이다.
주보에 공지를 보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용기를 내어 그곳에 가서 교육을 받았다. 마지막 날 수녀님이 강의 시간에 “당신이 배우자를 죽인 것이 아닙니다”라는 말씀을 하였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어두운 마음 안으로 한 줄기 빛이 들어오는 느낌과 함께 조금은 죄책감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아마도 대부분 사별한 사람들이 이런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아시고 말씀하신 것 같다.)
샘터라는 사별 가족 모임이 있다는 수녀님 말씀에 여기에 가면 “ 나와 같은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에 조금의 망설임 없이 모임에 나갔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하고 나면 이 넓은 우주에 내편은 하나도 없는 것 같고 외롭고 허전한 마음인데 그분들을 만나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꼭꼭 숨겨 놓았던 속내도 털어놓게 되고 주저리주저리 말해도 싫증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도 해 주다가 같이 눈물도 흘려주니 내편을 만난 것 같은 든든함과 편안함이 있어 참 좋았다. 서로에게 다 그랬다.
그러나 깊이 패인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못하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죽지 못해 살고 있구나.” 그때에는 매일 이 생각 속에 있었다. 얼마 전 책 정리를 하다가 책 속에서 툭 떨어진 메모지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날짜를 보니 사별한 지 3년이 지난 때이다.
내몸 구석구석 뭉치 뭉치 숨겨 놓았던 울음이 터져 나온다.
슬픔이 외로움이 애절함이 그리움이 보고 싶다.
언제쯤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것이 사는 것인가, 죽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밀렸다, 인생의 대열에서.
나의 운명인가, 누구의 장난인가.
아무튼 밀려났다.
그래서 오늘도 하늘을 본다.
어떻게 살까? 어떻게 살아낼까?
그물에는 물고기 한 마리 없고 우주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 절망, 분노, 자책감, 허무함, 후회 이런 것들로 꽉 차 있다고 투덜거린다.
“그물을 오른쪽에 던져라.”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 나를 따르라고, 의탁하라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다정하게 말을 건네신다.
너의 오른쪽은 낯선 곳이고, 위험한 곳이고 힘들고 외로운 곳이다. 그러나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곳이고 반드시 가야 할 곳이다.
“ 네 주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없습니다.”
앞으로의 나의 삶은 이웃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사람, 주저앉아 있는 사람에게 손을 내어주는 사람이고 싶다.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 상처받은 위로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모현 상실 수업을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내가 끌어안고 있는 아픔에서 벗어나 다양한 상실의 아픔을 만나고 싶었다. 각자 이별의 대상이 다르고 환경과 처지가 다르니 각자 느끼는 아픔의 색깔이 다르기에 상실에는 각자의 고유성이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남아 있는 나만 아픈 것이 아니고 나를 두고 떠날 수밖에 없는 남편의 아픔도 느껴지게 되었고 나의 죽음도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온 세상을 기쁘게 한 의미 있는 탄생이었듯이, 이 세상을 떠날 때도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 하느님께서 그대가 갑자기 죽는 것을 바라신다면
그 죽음은 그대에게 어떤 죽음보다 더 큰 은총이다.
하느님께서 우리 삶의 모든 환경과 당신 영광을 고려하여 사랑으로 선택하신 것이다.” -토마스 머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