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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정하면서 뜨거웠던 시간에 대하여
이름: 관리자


등록일: 2023-08-18 11:47
조회수: 98 / 추천수: 28


다정하면서 뜨거웠던 시간에 대하여
<모현 상실 수업 19기>를 마치며

김경희(한림대학교 생사학연구소 연구교수)

지난 5주 동안 모현상실수업 19기에 참여했다. 남산타워가 올려 다 보이는 후암동에서 4주는 비가 내렸고 안개가 흩날렸으며 비바람이 불었다. 수료식이 있던 마지막 토요일에는 덩굴장미가 빨갛게 피어나고 성모상에 햇빛이 화사했다. 교육이 진행되는 동안 교육을 담당하는 미카엘라 수녀님, 식사와 간식을 준비해주시는 수녀님들, 그리고 강사분들과 수강생들은 사려 깊었고 다정다감했다. 그 안에서 나는 일종의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느낀 안도감은 존재 자체로 수용되고 지지받는 체험이었다. 지금 이 모습 그대로도 ‘충분하며 괜찮다’라는 느낌은 천천히 내면으로 스며들어 존중감과 접속하고 있었다.
‘환영합니다’라는 손글씨와 앙증맞은 소품들, 귀여운 냅킨과 향기로운 커피, 정갈하고 정성스러운 간식과 점심, 수녀님의 반가운 인사과 가벼운 터치, 그리고 살아가는 이야기들은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세심하게 살피고 준비하는 마음 씀에서 환대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마음이 아프고 슬픈 사람들은 자기만의 감정에 몰두하여 주변을 살필 수 있는 여력이 없을 때가 많다. 특히 사별자들은 고인을 보내고 나서 자신은 작은 행복도 누리면, 안될 것 같은 미안함과 죄책감을 가질 수가 있다. 그러니 이러한 환대와 존중은 사별자의 정서를 자극하여, 그간 억눌렸던 긍정적인 느낌을 되살려 줄 수 있을 것이다. 오랜 현장경험에서 나온 지혜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감정을 다루는 사람들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답안을 본 느낌이었다.
수녀님의 사별 전반에 대한 이론강의와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활동들은 오랜 시간 사별자를 만났던 경험의 축적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서적에 쓰인 사별관련 내용들은 건조하지만, 사별자를 많이 만났던 수녀님의 이야기는 생생하여 학술적인 내용에 숨결을 불어넣고 있었다. 교육 중에 가장 중요하게 다가왔던 부분은 사별 동반자가 자신의 상실을 다뤄야 한다는 점이다. 억압하거나 회피하고 있던 상실을 꺼내어 이를 마주하고 다뤄봄으로써 다른 사별자를 동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애도는 시간이 산물이 아니다. 슬픔은 시간이 흐르면서 완화될 수는 있지만 해결되지 않은 상실은 삶의 중요한 순간에 불쑥 튀어나와 삶을 혼란으로 빠트리기도 한다. 그리고 애도는 인생 전반을 걸치면서 이루어진다. 애도가 다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고인은 새로운 의미로 현재에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상실은 아프지만, 성장으로 나아갈 기회를 제공한다. 생명은 죽음을 포함하고 있기에 상실은 인간의 기본조건이다. 그러므로 상실을 잘 다루고 애도과정을 거친다면 남은 삶을 더 의미있게 살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별을 동반하는 자조모임은 사별자의 삶을 회복하고 지지하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교육 과정에서 수행했던 미술·아로마·동작테라피는 관점의 변화를 체험하는 과정이었다. 어느 한 지점에 집중되거나 집착된 감정과 생각을 건드리고 다른 지점에서 자신을 볼 기회를 제공했다. 치유는 관점의 변화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사별자 역시 고인의 죽음 사건에만 집중되어 시선이 좁아진 상태이다. 다양한 테라피를 통해 사별자의 시선을 환기하고 또다른 지점에서 자신과 고인을 봄으로써 죽음과 이별에 대해 새로운 감각을 경험할 수 있다. 고인의 죽음 사건에 집중된 사별자의 시선을 고인의 삶 전체로 전환할 수 있다면 고인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고인과의 추억을 떠올리고 고인과 관계를 재정립할 기회가 되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 사별의 슬픔을 충분히 표현하거나 애도하는 문화가 부족하다. 3일장이 대중화되면서 3일의 휴가를 받아서 장례를 치르고 슬픔을 느끼기도 전에 일터로 복귀해야 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된다’라는 이유로, ‘이제 그만하면 됐다’라며 사별자가 느끼는 슬픔의 깊이를 외면하고 있다. 충분히 울지 못한 울음은 후일 또다른 상실에서 터져 나오고 사별자를 아프게 한다. 사별자들이 충분히 울고 자신을 표현하고 고인을 애도할 수있는 시간이 허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지속해서 사별 동반자를 양성하고 사별자 자조모임을 이끌어온 매리포터 호스피스영성연구소는 우리사회의 애도문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이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아파하는 누군가의 곁에 가만히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들의 고통을 느끼며 슬픔의 자리에 함께 머물고 싶다. 사별자에게 위로를 주는 지지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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